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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 용 / 보 /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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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kemoon 2003-03-04 13:49:53 | 조회 : 1970
제        목   동네 이장댁 흑백TV
파일   #1
   yes6.gif (54.6 KB) Download : 110

[2001.4.25 흑백사진속의 풍경]

소-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자꾸 과거가 그리워진다는 거....그리고 자꾸 옛음식이 먹고 싶어지는 거...
그리고 또...자꾸 옛일들을 떠올리는 거....라고 합니다.
오늘 흑백사진속의 풍경은
흑백TV가 있는 60년대 풍경을 되살려 보려고 합니다.

최-
흑백TV가 있는 60년대 풍경이요...
그 때는....뛰어 노는 것 밖에는 아이들의 무료함을 달래주는 도구가
없었다고 하더군요.....
당시에 여자아이들을 울렸던 건 만화 '엄마찾아 삼만리'였다고 해요...
한 소년이 가난 때문에 집을 나간 엄마를 찾아 나서면서 맞는
온갖 어려움과 슬픔을 그린 내용이었다고 합니다.

소-
네...지금 40대 이상이신분들께선 기억들 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60년대에 인기가 있던 만화영화는
'호피와 차돌바위', '똘이장군',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
그리고...
그 후 ...70년대 들어...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로보트 태권 브이"가 있었죠...

최-
그리고....'밀림의 왕자 레오'도 기억하시는 분이 많으시더군요.....
귀여운 흰사자 레오가 나오는 만화요.....

소-
그런데.....서울의 좀 부유한 집 아이들이나 그렇게 재미있는 것들을
모두 TV에서 볼 수 있었죠.....
대개 온동네 통틀어서 고작 TV가 한 대 밖에 없던 그 시절.....
TV가 있는 집의 아이는 유세가 참 대단하기도 했습니다.
그 얘기는 잠시 뒤에 말씀드리기로 하죠.
그런데....당시에 인기 있었던 사람들이 누군 줄 아세요?

최-
이화여대에서 공연을 했던 영국가수 클리프리차드가 있었죠?
당시 여학생들은 클리프 오빠를 떠올리면서 밤잠을 설치고 그랬대요....
당시 모든 한국 여학생들의 연인이었을 정도였다고 하네요...

소-
남자 아이들한테는 홍콩의 액션배우 이소룡의 인기가 하늘을 찔렀죠...
당시의 사내아이들은
웃통을 벗고 거울 앞에 비스듬히 서서
하도 못 먹어서 비쩍마르고 평평한 가슴에 온 힘을 다 모으고....
엄지 손가락을 콧등에 자꾸 문질러 댑니다.....
하도 문질러 대서 어떤 아이들은 코가 비뚤어질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게 다 이소룡 흉내를 내느라고 그런거였습니다.
그 때 아들이 있는 각 가정마다....
담장 밖으로 이런 소리들이 흘러 나왔습니다.
아오~! 아요~!

최-
그게 무슨 소리예요?
뭘 아느냐고 그렇게 아오~ 아요~하고 자꾸 물어보나요?

소-
네...이소룡이 영화속에서...상대의 기를 꺾기 위해서 내는
일종의 괴성이라고 할 수 있죠....
역시 40대 이상의 남자분들이라면.....
맞어 나도 그 때 그랬지...하고 씩 웃으실 거예요.....
이소룡은 영화를 통해서 스타가 된 사람이었구요....
시골에서는 또다른 스타들이 있었는데요.
흥겨운 품바춤을 추어가면서 가위소리를 내던 엿장수가 있었죠....
그런데....엿장수는 정말 모든게 엿장수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최-
그리고.....각종 무시무시한 차력술을 보이면서.....약을 팔던 약장수....
그 약장수의 말대로라면...세상에 못고치는 병이 없었다죠?

소-
그렇죠...순박한 시골 사람들에게
일단 화려하고 무지막지한 쇼를 보여준다음에....
만병통치약 인것처럼 약 선전을 했죠....
그리고 배 놓을 수 없는 사람이 바로 뱀장수 였습니다.
뱀장수는 어디에서 연수교육을 받고 나오는 건지...
한결같이 목소리를 이상하게 뒤집어서 내곤 했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도 어디에서 복사해온 것처럼 똑같은 내용이었습니다.

최-
뭐라고 그랬는데요?

소-
"자....한 번 잡숴봐....끝내줘.....마누라가 ...어쩌고 저쩌고.....
아침 밥상이 달라져.....인생이 달라진다니까....
자..나를 봐....놀랬지~?
자...애들은 가라....가서 아빠 모시고 와....자...애들은 가라....
이 뱜은 ....어쩌고 저쩌고.....한 번 잡숴봐....요강이....어쩌고 저쩌고...."

최-
더 듣고 있기가 민망하네요.....

소-
당연하지요....
저희 가요쇼가 성인을 위한 삼류 엽기 시사 코메디쇼인 것처럼....
뱀장수들도 성인을 위한 레파토리 뻔한 뱀쇼를 했으니까요.....
그런데.....약장수 뱀장수는 시장통에서 만날 수 있는 스타였는데요...
진공관 라디오와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거쳐.....
새롭게 등장한 도깨비 상자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흑백TV였습니다. 처음 TV를 본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상자속의 사람들이 움직이고 말을 하는지
그저 신기할 뿐이었습니다.

최-
네...온 동네를 통틀어서 TV라곤 겨우 한 대 였던 시절.....
그야말로 안방극장이란 말이 어울릴만큼
온동네 사람들이 다 TV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죠.....
여름이 되면...TV를 아예 마루에 내다놓고....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했다고 합니다.

소-
당시...흑백TV시절 최고의 스타는 누구였는지 모르시죠.....
바로....박치기왕 김일 선수였습니다.
그 때 프로레슬링은 엄청난 인기를 모으고 있었는데....
지금은 노환으로 누워계신 박치기의 명수 김일선수는....
온 국민의 애국심을 끌어 모으는 우리민족의 희망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런데....김일 선수는 처음엔 항상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박치기 한방으로 경기를 끝내곤 했습니다.
그리고 가끔 코브라트스트라는 이상한 기술로....
상대의 기권을 받아 내기도 했습니다.
김일 선수의 경기가 있었던 다음날.....
학교에 간 아이들은 온통 김일 선수의 레슬링경기 얘기뿐이었습니다.

최-
오늘은 고길동씨 얘기가 안나오네요......

소-
그 시절 고길동씨의 얘기가 빠질 수 없죠.....
아까....TV가 있는 집의 아이가 엄청난 유세를 부렸다는 말씀 드렸죠....
그 아이의 말은
곧 법이요 진리요 길이었습니다.
그 아이 말을 안 들었다간...그 날은 TV를 못보는 날이죠.....
어린 길동이네 집도 산다면 사는 집이었지만.....
당시 길동이 어머니는
TV가 있으면 공부를 아이들이 안한다고....TV를 안사셨답니다.
그래서 길동이는 몹시 치사하고 아니꼽지만....
성질 다 죽이고....그 집에 가서 가끔 TV를 봤는데요.....

최-
TV있는 집 아이하고 또 사건이 벌어졌군요.....

소-
왜 아니겠습니까......
그 날도 김일 선수의 경기가 있는 날이라서....
온 동네 꼬마들과 아저씨들이 다 모여들었습니다.
TV가 있는 집의....꼬마...길동이 보다 두살이 어렸답니다.
그 꼬마 풍돌이는.....이른 저녁부터.....동네 아이들의 길을 들이고 있었습니다.
"야~ 너 아까 나한테 사탕 한 개 줬지...너...맨 앞으로 와....
그리고....발냄새 나는 애....너는 들어오지 말고 문 밖에서 봐....
또....길동이....너는 키가 크니까.....음~ 너는....그래...너두....
그냥 문밖에 가서 봐....
어~ 안들려....야..임마 너 고길동...너 나가라구......짜샤..."

최-
그 아이 실수했네요.....아주 잠자는 사자의 콧털을 뽑았군요....
그 다음엔 뭐 얘기 안들어도 알겠습니다.

소-
그래도......
전 그 얘기를 해야 겠어요.....
어린 길동이...풍돌이 아빠가 뻔히 쳐다 보고 있는데도.....
다짜고짜...풍돌이의 멱살을 쥐고 끌고 나오더니....
마루 바닥 밑으로 사정없이 던져버립니다.
당시 고길동이 소리소리 질러대던 말들은 대충 이런 것들입니다.
"야...이 새..삐~...너는 에미 애비도...없냐....
어디서....행패를 부리고..지...삐~..
너...오늘...뼈도....어딜...형한테....길동이~....
오늘..제삿날....
내가 다시는...니네 집을....오줌도...안싸....잘 먹고...잘 살아....
풍돌 아버지....애들 교육 좀 똑바로...이런 걸 아들이라고...."
네...이런 말들을 내뱉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풍돌이 아빠의 주먹이 고길동의 머리통을 향해서.....
사정 없이 내리꽂혔답니다.
고길동은 그 날 태어나서 가장 많은 별이 눈앞에서 뜨는 걸
지켜 볼 수 있었답니다.

최-
그럼 결국 김일 선수의 경기를 보지 못했겠네요....
하여간 ...
그 성질 때문에 여러모로 피해 참 많이 보면서 산 인생이군요....
참.... 그런 인생 또 없습니다.

소-
그 길로 집에 돌아온 고길동씨....사흘 밤낮을 통곡하면서 뒹구는데....
어찌나...처절하게 울부짖는지....
길동엄마는 차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더랍니다.
결국 길동이네 집에도....TV 한 대가 들어오기에 이릅니다.
그 후....길동이네와 풍돌이네는 서로 왕래도 하지않는...
그리고....봐도 못본척 하는.....
가문의 원수처럼 지내고 있다나..어쨌다나...그렇대요....

최-
네....지금도 고길동씨의 낡은 사진첩에는.....
어린 고길동이가...
기름 걸레로 TV의 윤을 내고 있는 장면이 찍힌
흑백사진 한 장이 들어있다고 합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비장해 보이던지.....
꼴을 보다 못한 친척 어른이 한 방 박아둔 거랍니다.
그래도 어린 고길동은.....
"청소년 여러분 밤이 깊었습니다.....이제 잠자리에 들 시간입니다"
하는 말이 나오면....곧바로 TV곁을 떠났다고 자랑하던데요.....
자긴 범생이었대요...모범생.
물론 믿거나 말거나이겠지만.....

소-
그런 고길동씨.....요즘은...웬만해선 TV를 안본대요.....
스포츠 경기나....뉴스만 본다고 하더군요.....
TV는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나....
그래서 자기도 TV방송이 아닌 라디오에 있다고 하는데...
믿어야 할 지.....
하여간....
온 동네에 TV가 한 대 뿐이던 시절은 금세 가버리고 맙니다.
당시 잘살아보자며....열심히 새마을 운동을 해서 그런지....
한 집 두 집...TV 안테나가 하늘 높이 올라갑니다.
당시 아이들은 지붕위로 높이 올라간 은빛 TV안테나를 보면서....
무척 뿌듯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최-
당연히 그랬겠죠.....
TV가 있던 풍돌이한테 간쓸개 모두 빼놓고 굽실거리지 않아도 되고.....
우리집도 부자라는 느낌이 들었겠죠.....

소-
온 집안을 뒤져봐도 훔쳐갈 물건이라곤 하나도 없던 시절....
테레비라고 부르던....그 TV 상자는....재산 목록 1호였습니다.
그렇지만 칙칙한 흑백TV시절도 잠시......
그토록 소중하던 흑백TV는 점차 칼라TV로 하나씩 바뀌어 갔습니다.
그리고....사람들의 얼굴도 점차 환하게 밝아져갔죠...
그토록 질기게 따라붙던 가난을 조금씩 물리치고 있었던거죠....

최-
흑백 사진 속의 풍경.....
오늘은
흑백TV가 있는 60년대 풍경을 되살려 봤습니다.
아련하게 추억여행 잘 다녀 오셨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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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3.7 흑백 사진 속 풍경] 소- 나이가 어느덧 중년으로 접어들 무렵............ 마음은....자꾸....어릴적의 고향으로 가 있습니다..... 사는 게 아무리 바뻐도.....마음이....어느 틈엔가..... 고향 언저리를 서성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이... ...more
 
03.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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