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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 용 / 보 / 기
글작성자
  lakemoon 2003-03-04 15:41:45 | 조회 : 2750
제        목   검정고무신이 있던 풍경
파일   #1
   go17.gif (86.2 KB) Download : 116

[2001.9.5 흑백사진 속의 풍경]

소-
우리나라에 고무신이 언제 처음 들어왔는지 아세요?

최-
고무신이 뭐예요?
고무를 숭배하는 토속신앙인가요?

소-
진짜 모르세요?

최-
왜 모르겠어요?
남자친구가 군대 가면...여자들이 거꾸로 신는 거....그거잖아요....

소-
우리나라에 고무신이 처음 들어 온 건 1920년대였다고 하네요.
양말도 그 때 처음 들어왔답니다.
그래서...1960년대 까지는 가장 일반적인 신발이 고무신이었다고 합니다.
김초시댁 예쁜이는 꽃신을 신을 수 있었지만....
오돌이도...갑식이도...호득이도 죄다 검정 고무신을 신었죠.
그리고 길동이와 길길이도 봄,여름,가을,겨울...
언제나 검정 고무신을 신었습니다.

최-
사계절 전천후 신발인 고무신은......잘 찢어져서
발가락이 삐죽 튀어나와도....절대 버릴 수 없었습니다.
당시로서는 귀한 신발이었으니까요....
바닥이 종이장처럼 얇아지거나 군데군데 구멍이 나면....
발바닥이 신발바닥의 역할을 대신했습니다.
고무신을 벗으면 구멍난 부분만 까맣게 표시가 나곤했습니다.
개구장이 길길이는 발에 송곳을 달고 다니는지....
고무신만 샀다하면....금세 헌신발로 만드는 재주가 있습니다.

소-(길길이)
"엄마~나~ 신발 빵꾸났어~ 새로 사줘...."

최-
하지만.... 엄마는 들은 척도 하지 않습니다.
저 놈을 어떻게 할 것인가...고민에 빠진 모양입니다.
괜시리 애꿎은 부지깽이만 만지작 거리십니다.

소-(길길이)
"엄마~ 나...신발 빵꾸났다고...빨리 사줘~
신발 안사주면~ 나 ~ 집나간다~?"

최-
요러다가.......
"나가! 나가! 나가! 이 놈아....
내가 너를 이렇게 키우든~ ?" 소리와 함께
부지깽이에 한 열대 쯤 맞고 ... 입을 꽉 다물곤 했습니다.
네....사실 엄마는 그렇게 키우셨습니다.
돈으로는 다 안되니까....그렇게 부지깽이로 키우셨습니다.

소-
울다지쳐 잠이 든 길길이의 머리맡에서.....
어머니는 아까부터 무언가 깁고 계십니다.
깜깍거리는 호롱불 때문에 눈이 침침하신지.....
자꾸만 눈을 비비면서 바느질을 하십니다.
길길이의 고무신을 꿰매고 계신 겁니다.
하지만...길동이는 잠자는 척하면서 다 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침침해서 자꾸 눈을 비빈게 아니라는 것을...
길동이는 그 날...어머니의 눈가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별빛을 봤답니다.

최-
다음 날 아침 섬돌 위에는.....
흰 실로 얼기설기 기운 길길이의 검정고무신이
길동이의 고무신과 함께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길길이는 키도 형인 길동이 보다 컸지만....발도 커서....
길동이의 신발보다 보통 한 문은 더 큰 걸 신습니다.
그 날...서둘러 학교에 간다고 나선 길길이.....
길동이의 고무신을 몰래 신고나갔다가....또 헌 신발을 만들어서 돌아 옵니다.
작은 신발을 신고서 돌맹이를 걷어차다가 찢어진 모양입니다.

소-
어머니의 부지깽이를 피해 동네로 피신하는 길길이....
이제 더이상 신을 신발이 없자
어머니가 외출용으로 신는 꽃신을 슬쩍 신어 봅니다.
참 어처구니가 없는 길길이가 아닐 수 없습니다.
길동이는 동생 길길이를 저대로 그냥 둬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는지...
결투를 신청합니다.
그 누구도 둘은 형제라고는 절대 믿을 수 없을만큼
실로 처절한 전투를 벌입니다.
고작해야 어설픈 앞차기 밖에 할 수 없는 길동이에 비해.....
길길이는 학교에서 배운 태권도의 품새를 하나씩 화려하게 선보입니다.

최-(길길이)
"이단 옆차기~ 이얏~!
이번엔 공중 돌아차기다~ 얏~!
자~ 이건 뒤돌려 차기 얏~!"

소-
네....저 놈은 밥먹고 태권도 연습만 했는지.....
길동이는 흠씬 얻어맞으면서...동생 길길이의 솜씨에 감탄을 했답니다.
형을 쓰러뜨린 길길이는
그게 미안했는지..... 결국 맨발로 놀러 나갑니다.

최-
한참을 누워있다가 정신을 차린 길동이...
쭈구리고 앉아서 뭔가 열중하고 있습니다.
길길이와 자기의 너덜너덜한 고무신을 때우고 있는 겁니다.
예전에 신다가 더이상 신을 수 없어서
처마 밑에 쳐박혀 이있던....헌고무신을 가위로 오려내서
'만능강력본드'를 발라 고무신의 찢어진 부분에 덧대는 방법입니다.
어린 놈이 별 걸 다할줄 알았던 모양입니다.
제법 그럴싸하게 고무신을 손질한 길동이는 잠시 고민에 빠집니다.
직업을 가수에서... 이쪽으로 바꿔?

소-
네.... 꼴에 가수를 꿈꿨던 모양입니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그 노래실력으로.....참 꿈도 야무집니다.
그런데.....
당시에 고무신은 무척 다양한 용도로 사용됐습니다.
운동장이나 모래밭에서 놀때는....장난감 자동차가 됩니다.
그 자동차에는 주로 자갈이나 모래들이 타고 다니곤 했죠.

최-
그리고....냇가에 가면....송사리를 잡는 그물도 되고....
물고기를 담아두는 그릇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전설에 따르면.....
길동이의 고무신에 담긴 물고기들은 금세 죽고 말았는데....
죽을 때는 꼭 이런 유언을 남기곤 했답니다.

소-(물고기)
"으아아~ 발냄새에 쓰러진다...."

최-
그런가 하면....곤충채집 도구로도 쓰였는데....
매미나 벌을 잡을때....고무신의 발가락이 담기는 부분을 사용했습니다.
일단 고무신에 들어간 곤충들은 금방 정신을 잃고 맙니다.
무론 발냄새도 고약했지만...
일단 고무신에 무언가 들어갓다고 생각하면
아이들은 고무신을 빙빙돌립니다. 쥐불놀이할 때 깡통을 돌리듯이 말이죠.
그리고 마무리는 땅바닥에 힘껏 내리치면 됩니다.
그러면...아무리 정신력이 강한 벌이나 매미도 곧 혼절하고 맙니다.

소-
고무신은 또.... 정치인들에겐 없어서는 안될 아주 소중한 물건이었습니다.
국회의원이 되려면 고무신 돌리기가 필수였으니까요.
물론 정치인들이 고무신으로 매미나 벌을 잘 잡아야한다는 건 아닙니다.
공짜로 고무신을 받은 어른들은......
"우리같은 사람들이 어느 놈이 어느 놈이지 워떻게 알어~.....
고무신을 받았으니까.... 고무신 준 사람 찍어야지..암~
솔직이 그 놈이 그 놈 아녀~?"
네.... 지금은 안그렇겠지만....옛날엔 그랬다는 거니까....
정치하시는 분들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최-
그런데...그게 나중엔 이렇게 바뀌잖아요.
"주는 건 다 받고 찍는 건 내마음이다 뭐"
고무신의 용도는 또 있습니다.
나무그늘에 누울때는....베개로도 쓰입니다.
일단 고무신을 베고 누웠다하면 곤한 잠에 바질 수 있습니다.
어쩌면 냄새에 마취된 건지도 모르지만.....

소-
그 뿐이 아닙니다.
위급시에는 무기로도 사용됩니다.
이소룡은 쌍절봉을 무기로 화려하게 사용했다면.....
대한민국 어느 고을의 갑식이는 일제때 일본깡패와 싸울 때마다
고무신을 벗어 들고 실로 화려한 기술을 발휘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도 있었습니다.
고무신을 벗는 것도
허리를 구부리고 벗어 드는 게 아니라....
꼿꼿이 선채로 발을 앞으로 내고 한 번 까닥하면.....
어느새 고무신은 갑식이의 손에 들려 있더랍니다.

최-
우리민족에게 그렇게 정겹고 많은 추억을 주었던 고무신은....
이제는 어디가서 구할 수도 없는 귀한 존재가 돼 있습니다.
'만월표' '말표' '진짜'...이런 게 기억 나시는지요.
고무신 바닥에 씌여있던 글들입니다.
서민의 신발이었던 고무신.....
그런데.....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에서 고무신을 최초로 신은 사람은....
나라잃은 임금님으로 기록된 순종임금님이었다고 합니다.

소-
학교 신발장에서 맨날 헌고무신으로바뀌곤 했던 그 옛날의 고무신.....
흰고무신에는 이름이라고 써넣을 수 있었지만....
검정고무신은 먼저 신고 가는 놈이 임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어떤 놈은 새신이 생겼다고 신이 났고
어떤 놈은 다 떨어진 고무신을 털털 끌고 집으로 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아무리 검정고무신이라고
어떻게든 자기 거라는 걸 표시해 둬야 했습니다.

최-
그 당시엔...
어떤 애들은 신발이 닳까봐 신지 않고 들고 다니기도 했다죠?
흑백사진 속의 풍경.....
오늘은
할아버지,할머니,아버지, 어머니....그리고....아이들의 고무신이
죽~ 놓여있는....
70년대 시골집의 섬돌 모습과.....추억들을 그려봤습니다.
배고프고 힘들었지만.....
낭만이 있었고 아름다웠던....그 시절....
되돌릴 수 없어 더욱 가슴저린 시절의 이야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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