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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 용 / 보 / 기
글작성자
  lakemoon 2003-03-04 15:36:59 | 조회 : 1949
제        목   곤충채집하던 늦여름 풍경
파일   #1
   go14.gif (50.4 KB) Download : 85

[2001.8.22 흑백사진 속의 풍경]

최-
한 낮에는 아직도 햇살이 따갑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지만....
선뜻선뜻 부는 한 줄기 바람속에는
어느새 가을 냄새가 묻어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소-
새벽에는 오슬오슬 추위까지 느껴지던데요?
방학이 끝나가는 이 무렵쯤 개구장이 아이들은
갑자기 불안해집니다.
매일 냇가로 들로 산으로 쏘다니면서 놀기에 바쁜 아이를 보면서
아버지가 한 말씀 하십니다.
"얘~ 너 방학숙제 다 했냐?"
아이는 할 말이 없습니다. 뭐 해 놓은 게 있어야죠.

최-
아이는... 이제 늦었으니 방학숙제를 다 할 수는 없다고 판단을 내리고
최소한의 숙제를 하기로 마음을 먹는데.....
그게 대부분 곤충채집 정도였습니다.

소-
네... 화투 좋아하시는 분들은 이해하시겠지만....
피박이나 면해 보자는 심리죠.
아니면 대형사고가 날 수도 있으니까요.
예전에 매미채가 없으면.... 뭘 사용했는지 기억하시는지요?
거미줄입니다.
긴 막대기 끝에 철사로 원을 만들어서 고정을 하고
그 둥근 철사에는 거미줄을 뭍힙니다.
광이나...화장실 구석.... 닭장 처마밑에 있는 거미줄을 뭍히는 거죠.

최-
거기에도 뭐가 잡히나요?

소-
그런 말씀 마세요? 얼마나 잘 잡히는 데요.
하늘을 나는 모두 곤충은 꼼짝마랍니다.
어떤 아이의 얘기에 따르면.....
뭐가 큼지막한 게 잡혔다 싶어서 보니까? 비행기라고 할 정돕니다.
물론 그저 하는 소리죠.
하지만... 거미줄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어떤 거미줄에는 작은 참새 같은 것도 걸릴 정도니까요.

최-
곤충채집하느라고....거미줄을 뭍히는 건 좋은데요.
그 거미 입장은 생각해 보셨나요?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그 거미....불쌍하지 않으세요?
새끼들은 배고프다고 보채지.... 남편은 밥달라고 소리치지....
그런 불쌍한 거미의 터전을 그냥 없애버린거잖아요.
차라리 방학숙제를 안하고 말지.......
인간의 탈을 쓰고....어떻게 그렇게 몹쓸 짓을 합니까?

소-
듣고 보니까.... 그런 면도 있네요.
그 시절... 꼬마 길동이도 갑자기 바빠졌습니다.
헌 모기장을 잘라서 바느질을 하고 ...철사에 매달고.....
먹대기를 찾아서 매미채 만들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요즘이야....문방구에 가면 없는 거 없이 다 있지만.....
예전의 아이들은 필요하면 모조리 다 직접 만들어서 썼습니다.
하지만...
동생 길길이는....방학숙제는 아예 하나도 하지 않을 모양입니다.
아침부터 고기그물을 들고 나가면서.... 한 마디 합니다.

최-(길길이)
"야~...길동아 뭐하니?.... 매미채?.....그게?
하이고~! 매미가 널 잡겠다.....
그래...한 번 열심히 해봐~.....
고기를 잡으러 산으로 갈까요....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갈까요....
쉬쉬쉬 쏴쏴쏴...."

소-
저 놈은 언제 형을 형이라 부를지 모르겠습니다.
길동이는 동생 길길이의 놀림도 아랑곳 하지 않고 열중한 끝에.....
비록 모양은 좀 엉성하지만.... 그래도 매미채 하나를 만들어 들고....
곤충채집에 나섭니다.

최-
잠자리를 잡느라고 매미채를 휘두르다가... 참깨나무 다 부러뜨리고...
매미 잡는다고 난리를 피다가...
노릇노릇 잘 익어가는 멀쩡한 배도 떨어뜨리고...
나비를 쫓아간다고 하늘만 보고 달리다가....배추밭 다 뭉개놓고....
하여간...길동이는 하는 짓마다 왜 그리 어설픈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한 나절을 뛰어나니면서 전쟁을 치룬 끝에....
매미, 잠자리, 나비.... 겨우 두어 마리를 생포하는 전과를 올린 길동이...
"아냐... 이것으론 부족해.... 뭔가 특별한 곤충채집을 해서....
선생님한테 칭찬받아야쥐~"하는 혼잣말을 남기고.....
과수원 울타리를 나섭니다.

소-
둑방길 옆....병헌이네 논에는... 메뚜기가 많았습니다.
메뚜기 몇마리를 잡고 돌아서려는 순간....
언제 와 있었는지....병헌이가 노려보고 있습니다.
"야...임마...우리 논에서 잡은 거 다 내놔.... 그 메뚜기 다 우리거야....
너 메뚜기 놓고 갈래.... 아니면....메뚜기 뜀으로 집까지 갈래....."
참.... 인심이 이렇게 야박해서야.... 어디 동네 친구라고 하겠습니까?
하지만.... 병헌이로서는
과수원 울타리 밖으로 삐져나온 배 하나 따 먹다가....
관리인 아저씨 한테 걸려서 토끼뜀을 뛴 기억이 있는 아이였습니다.
그걸 앙갚음을 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최-
애써 잡은 메뚜기 다 돌려주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눈물이 앞을 가리더랍니다.
길동이는 하는 수 없이 다시 과수원으로 돌아 옵니다.
자세히 보니까.... 과수원에도 참 많은 곤충이 살고 있었습니다.
메뚜기.... 장수 메뚜기.... 방아깨비....
그리고 사마귀가 있었습니다.
한 번 물리면 사마귀가 생긴다는 그 사마귀입니다.
사마귀 바로 옆에서는 징그런 자벌레가...
마치 손뼘으로 길이를 재듯이 행진을 합니다.
"나는 곤충 아닌데.... 나는 안 잡을 거지... 잡으려면 잡아봐....
이렇게 징그러운데...잡을거야?..."

소-
길동이는 고민에 빠집니다.
'도대체 저 재수없이 생긴 사마귀를 내가 잡아야 하는 거야....
말아야 하는 거야.....'
사마귀 놈 또한 길동이의 눈치만 살피고 있습니다.
'저 이상하게 생긴 놈이 감히 나를 잡을까?... 설마~...'
길동이와 사마귀는 서로 노려만 보고 있습니다.
순간 길동이의 뇌리에는 얼마전 빌려 본 만화가 떠올랐습니다.
강호 무림의 고수만이 구사할 수 있다는 당랑권....
그 당랑권이
바로 저 끔짓하게 생긴 사마귀의 몸짓에서 만들어진 거라는....
만화의 내용이 떠오른 겁니다.
길동이는 사마귀는 깨끗이 포기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대신...아까부터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요란스럽게 길동이를 놀리고 있던 말매미 한 마리를
분풀이로 잡아서... 집으로 돌아 옵니다.

최-
집근처에도 곤충은 많았습니다.
풍뎅이, 무당벌레, 집게벌레, 하늘소......
이제 제법...많은 곤충이 모아졌습니다.
양동이에 하나 가득 물고기를 잡아 온... 동생 길길이는.....
제법 많은 곤충들을 잡아 놓고 으스대는 길동이가 갑자기 부러워 집니다.
"야...길동아.... 나 좀 주라... 그러면... 내가 너 안때릴게....."
하지만... 길동이는 어떻게 잡은 건데.... 남을 주겠습니까?
길길이의 간청을 몯들은 척 하고 먼산만 바라보던 길동이는.....
화가 난 길길이의 이단옆차기 한 방에 뒤로 벌렁 자빠져
아프다고 ...마당을 두 바퀴 굴러다니다가
동생이 때렸다며 엄마한테 고자질을 합니다.

소-
본디.... 무사의 피가 흐르는.... 길동이의 어머니는....
부지깽이 다루기의 진정한 고수답게.... 길동이의 눈앞에서....
화려한 부지깽이 솜씨를 선보입니다.
길동이가 어머니의 부지깽이에 그렇게 처절하게 맞는 이유는 ....
이르는 놈이 더 나쁘다는 거였습니다.
길동이는 참 서럽습니다.
저녁밥도 안먹고 처마밑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 보니......
무수한 별들이 우수수 쏟아져 내립니다.
길동이.... 그 날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서럽게 울었답니다.

최-
길동이가...처마 밑에서 그렇게 청승을 떠는 동안......
동생 길길이는 숙제 안한다고 .... 역시 부지깽이에 몇대 맞고.....
나름대로 곤충채집을 했답니다.
우선... 눈에 보이는 파리 한 마리 때려 잡고....
모기 한 마리 잡아서 책갈피에 끼우고......
가을도 아닌데 시끄럽게 울어대는 귀뚜라미도 잡고.....
제 발로 ...아니...제 날개로 날아 들어온 풍뎅이 한 마리는
방구석에 있던 걸레를 집어 던져서 잡고.........
천정 구석에서 졸고 있던...거미는 빗자루로 뭍혀서 잡고.....
네... 실로 초라하고 형편없는 곤충채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소-
개학이 되고 얼마 있다가.......
전교생이 모인 조회때....길동이는 방학숙제 잘했다고....상을 받습니다.
그 때...
동생 길길이는 맨 뒷줄에서..... 운동장 바닥만 발로 벅벅 긁고 있었답니다.
혼자 상받을 거.... 동생하고 나눠서 숙제할 것이지....
꼬마 길동이는 참 얄밉네요.

최-
흑백 사진속의 풍경...오늘은....
잠자리랑 나비를  쫓아서 들판을 누비던....
초등학교 어린 시절의 늦여름 풍경을 그려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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