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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 용 / 보 / 기
글작성자
  lakemoon 2003-03-04 10:45:48 | 조회 : 2006
제        목   과일서리에 관한 기억
파일   #1
   go1.gif (103.1 KB) Download : 103

[2001.3.14 흑백사진속의 풍경]

소-
'서리'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대략 열가지 정도의 낱말이 나옵니다.
오늘 흑백사진속의 풍경은 서리에 대한 이야깁니다.
경기도 일대도 예전에는 대부분 시골이었기 때문에
나이가 좀 드신 분들은 과일서리에 대한 추억들 다 있으실 거예요.

최-
있죠.....
저도 서리에 대한 기억이 있어요.....

소-
여자가....무슨 서리를 다 해요....이상한 여자 아녜요?

최-
제가....외모가 좀 출중하다 보니까.....
뭇남성들의 마음을 서리하고 있다는 생각을 가끔 하지요.....제가....

소-
이상한 여자 맞구만......
서리라는 말은 순수한 우리말인데요.....
주로 농촌에서,
밭에서 기르는 작물의 열매나
집에서 기르는 닭 따위의 가축을
여러 사람이 장난 삼아서 주인 몰래 훔치거나 함께 먹는 일을 말합니다.

최-
훔치는 건 나쁜 일인데.....벌 받는데.....

소-
예전에 시골에서는 참 먹을 게 없었습니다.

최-
도시가 더 먹을 게 없었다던데요.....
시골에는 밭이나....산에 나가면 먹을 것들이 다 널려 있는데.....
도시에서는 그런 게 없잖아요.
도시의 어린이는 얼마나 배가 고팠겠어요.....

소-
그것도 말은 되네요....
하여간....서리라는 행위는
주로 글방에서 공부를 하던 학동들이.....
하늘 천 따지.....가마솥에 누릉지......하면서 공부를 하다보면.....
자꾸...뱃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 겁니다.
그래서 슬그머니 배를 만져 보면.....
뱃가죽이 등에 가서 달라 붙어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한창 먹을 나이에 뭘 제대로 먹은게 없다보니까.....
밤 늦게 밀려오는 엄청난 허기에....아이들은 급기야.....
서리를 하기로 중지를 모읍니다.

최-
남의 것을 훔치기로 중지를 모아요?
학문을 하는 학동들이?.....학동이 아니고...악동이겠죠.....

소-
시간이 야심해지면.....배가 고프기는 아이들만이 아니었습니다.
하루종일 논밭에 나가서 일을 하고 들어와.....
저녁을 먹긴 했지만.....밤이 깊어지면서.....
동네 청년들의 뱃가죽과 등가죽도 서글픈 상봉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방에 모여 앉아
공통화제인 농사 얘기와........
옆 동네 사는 순이 얘기에 밤은 ....자꾸 깊어가는데.....
청년들의 뱃속에선 아이들 보다 훨씬 우렁찬 천둥소리가 들립니다.
꾸르르륵~
급기야.....동네 청년들도.....서리에 나서기로 합니다.

최-
그러다가....서리에 나선 아이들과 마주치는 경우도 있겠네요?
그게 무슨 망신입니까? 애들 앞에서 .....

소-
그건 걱정을 안하셔도 돼지요......
"떼끼....이 눔들아.....가서 공부나 해야지.....여기서 뭐하는 거여!"
하고 호통을 쳐서 쫓아 버리고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거죠.....그래봤자....서리하는 거지만....

최-
그럼 아이들은 그냥 돌아가나요?

소-
그럴리가 없죠......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다시 공격목표를 향해 총집결합니다.
애들이 배가 고프면 더 고픈 법이니까요.....참을 수가 없는거죠....
참을 수 없는 배고픔의 가벼움이라고나 할까요?

최-
배가 고프면....라면이나 끓여 먹지.....왜 그런대요?

소-
왜...? 밥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된다고 하지 그랬수?
주로 서리를 하는 대상은
때에 맞춰서....참 다양합니다.
콩서리, 참외서리, 수박서리, 대추, 옥수수, 밤, 배, 사과....
심지어는 무서리까지 합니다.
뭐....먹을 만 한 건 닥치는 대로 하는 거죠.....
일단 허기를 달랬어야 하는 거니까......

최-
과일이야...뭐...애교로 봐줄 수 있었다지만
닭서리도 한다면서요......그건...완전 닭도둑이잖아요.....

소-
닭만 훔치는 게 아니죠.....
동네...누구네 집에 오리가 투실투실 살이 올랐는지.....
누구네 집 누렁이가....먹음직스럽게 생겼는지도....
다 알고 있는 청년들은.....
오리나...개도 서리를 합니다. 그건 조금 심하죠?

최-
닭도둑으로 모자라서....오리도둑에....개도둑까지..?

소-
그리고....더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면.....
사람서리도 했습니다.....
일찍 홀로된 청상과부를 눈여겨 보던.....홀아비는.....
마음속의 불타오르는 연정을 달랠길이 없어.....
큰 자루를 가지고 가서 보쌈을 해서는......
새로 살림을 차리기도 했다는 얘기도 있어요......

최-
설마요.....그건 납치죄에 해당하는 건데........

소-
저도 직접 듣거나 본 얘기가 아니라서...
뭐....안 믿어도 할 수 없는 이야기지만....
아뭏든 어르신들한테 그렇게 들었습니다.
그런데....최형우씨...아까부터 자꾸 그렇게 따지기만 할 거예요?

최-
따지는 것 처럼 들리셨어요?
그러면...저도 들은 얘기를 해드리죠.....
오늘 방송 준비하면서......고길동씨한테 들은 얘긴데요......
고길동씨는 어릴 때 과수원집 아들이었다네요.......
그래서.....여름이면....원두막에서도....잠을 자고 그랬답니다....
원두막에...고길동이 있어봤자.....누가 어린 고길동을 무서워하겠어요....
매일밤 누군가....아카시아 나무 울타리를 뚫고.....
과일을 따가더랍니다.
그래서...고길동은....어느날 취약지점에 가서 미리 잠복근무를 하고 있었대요.
그 날은 마침 보름달이 떠서.....어스름 밤을 밝혀주고 있었는데....
잠복근무중이던.....고길동씨한테.....그 때는 어릴 때니까....
고길동의 안테나에 이상징후가 발견이 된 겁니다.
고길동이는 커다란 작대기가 하나 들려 있었습니다.

소-
그 얘기 오늘 중으로 끝나기는 하는 건가요?

최-
왜 이러세요.....아직 멀었는데....
살금 살금.....다가간 고길동.....벼락같이 소리를 칩니다.
"누구얏!"
이 날카로운 소리를 듣고 깜짝놀란 서리꾼....
아카시아 울타리를 헤치다가....줄행랑을 치는데.....
고길동은....
그 헤쳐진....울타리 구멍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도망가는 서리꾼의 뒷모습을 똑바로 봤답니다.
어디서 많이 보던 옷을 입고 있더라는 거죠.....
다음 날 학교에서 만난 동네친구....얼굴에 긇힌 자국이 나있더래요.
아카시아 울타리에서 긇힌거죠......

소-
그럼 그 친구는 거의 박살이 났겠군요.....
고길동 성질.... 어릴 때라고 어디 고왔겠습니까? 뻔한거지....

최-
그건 모르겠는데요.....
자기 말로는....그냥 모른척 했대요.....

소-
그건 맞는 얘길지 모르겠네요.....
예전엔......동네 악동들이나...청년들이....서리를 해도.....
주인들은.....그냥 모른척하고 넘어갔대요
비록 배고픈 시절이었지만....마음에 여유가 있었던거죠.
그럴 수 있었던게.....
이렇게 서리를 해 온 걸 놓고서는
주인을 불러다 같이 먹기도 했구요.....
또 .....
오늘은 이 집에서 닭서리를 하면.....
내일은 저 집에서.....수박서리를 하는 식으로
이집 저집의 것을 서리해다가....
동네 사람끼리 나눠먹는 거 였기 때문에....
결국은 동네 물건가지고 동네 잔치하는 식이라서
대부분.... 관대히 넘어가곤 했다는 겁니다.

최-
서리를 하다가 잡히는 경우도 있을 거 아녜요.....

소-
그럼요....꼭 둔한 애가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죠.....
남들은 다 도망 갔는데.....맨날 걔만 잡혀서....
공범이 누구 였는지.... 다 술술 부는 애...꼭 있죠.....
일단 잡힌 아이는 자기가 딴 과일을 입에 물고....
양손에 들고 벌을 섭니다......
주인 아저씨는.....과일이 아깝거나....서리를 한 아이가 미워서라기 보다는
도둑질을 하면 벌을 받게 된다는 걸 가르쳐 주기 위해서....
잔뜩 겁을 줘 가면서...벌을 세웠습니다.
벌을 세우고 나면....
우리 인심좋은 당시의 아저씨들...
그 애가 딴 과일을 싸주면서.....
가족과 함께 먹으라는 말을 하면서 돌려 보냅니다.
그러면....아이는 ....울면서....
"아저씨 죄송합니다....엉엉.....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구...이거 잘 먹을께요...엉엉...."하면서 돌아서자 마자....
얼굴에 함박웃음을 짖습니다.

최-
서리는 밥에만 하지는 않았다면서요.....

소-
그럼요.....배가 밤에만 고프라는 법이 있나요?
한 여름....원두막을 지키는 아저씨는
살살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졸음이 밀려 옵니다.
아이들은 이 대를 놓칠리가 없습니다.
동네 개구장이 녀석들은....
살금살금 낮은 포복으로 참외밭이나...수박밭으로 기어들죠.....
그러다....운이 나쁘면....
과일밭 주인이 하필 그 때 잠에서 깹니다.
"야~ 개똥아....너 거기 가만히 서 있거라.....
너...우리 밭에 김매러 왔니.....? 거기에 왜 들어가 있는거야?"
하고는 원두막에서 내려와
역시 벌을 세웁니다.....

최-
입에 물고...양 손에 들고..?

소-
그렇죠.....
아이는 울음으로 호소를 하지만......
과일밭 주인은....뒤돌아 웃으면서도....아이에게는 단호합니다.
"너 이 녀석!....옷 다 벗고 집에가서....엄마한테 말씀드려....
서리하다가 들켰으니까....와서 옷 찾아가시라고....."
아이는....옷을 모두 벗어 놓고....
백주대낮에....알몸을 하고 집으로 갈 수 밖에 없는거죠...

최-
그거 참 볼 만 했겠군요....

소-
이 모습을 본....동네 여자 아이들은 좋은 구경거리가 생긴거죠....
얼굴을 가린 열 손가락 사이로 볼 건 다 보면서..이럽니다....
"어머..어머....쟤 좀 봐....얼레리 꼴레리...." 까르르르르르.......
그래도....사내라고 주장하는 이 개구장이는
얼마나 창피했겠습니까?
부끄러운 마음에 더욱 속력을 내서 달려 갑니다.
아무리 꼬마라지만.....
덜렁덜렁 거리면서 뛰는 모습을 보고....
동네 사람들은 살아있는 코미디를 즐겼던거죠......

최-
소영선씨도 그런 적 있으세요?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소-
전 아니구요.....어떤 애들이...그랬다는 말입니다.

최-
에이...아닌 것 같은데.....경험담 아녜요?

소-
어린 고길동 얘길 거예요...아마....
어쨋든.....그 인심 좋은 원두막 주인 아저씨....
그리고....그 때의 개구장이들이 보고 싶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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