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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 용 / 보 / 기
글작성자
  lakemoon 2003-03-04 15:25:39 | 조회 : 1928
제        목   비만 오면 홍수가 나던 개울가 풍경
파일   #1
   go3.gif (100.2 KB) Download : 98

[2001.7.4 흑백사진 속의 풍경]

최-
장마가 잠시 쉬고 있네요.
태풍 제비는 조용히 사라졌는데.....이번 태풍 '우토'도
얌전하게 물러날 것 같습니다.
올해엔 가뭄 때문에 마음고생이 컸으니까.....태풍 피해라도 없으면 좋겠네요.

소-
최형우씨는....다 큰 게 아니고...벌써 다 늙어버렸네요
어쩌면 얘기를 그렇게 할머니처럼 하세요?......
원래가 그러세요?
사람들은 대개 맑고 화창한 날을 좋아하잖아요?.....
그런데....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그런 궂은 날씨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고 해요.

최-
가요쇼PD 고길동이라는 사람도 그렇답니다.
예전엔 군대가기 전에 신체검사를 받을 때
인성검사도 했다는데요.
그 사람은 20년 전에 국군통합병원에서 신체검사를 받았는데...
정신이상으로 판명받기도 한 인물입니다.
그 양반이
그렇게 비 오는 날이나 궂은 날을 좋아 한다고 하잖아요....
뭐....술 마시기 좋은 분위기라나~?

소-
그럼 제 정신이 아닌 사람이나 그런 날을 좋아한다는 겁니까?

최-
하여간....
지금으로부터 30여년전...당시 이 즈음도 역시 장마철이었습니다.

소-
30여년전...? 할머니 춘추가 올해 어떻게 되시죠?

최-
글쎄요...아직 서른은 안됐을겁니다... 아마.....?
그냥 들어 두세요......다 좋은 얘기니까.....
30여년전....
밤새 퍼붓던 비는 아침에도 여전히  죽죽 내리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하늘 어느 곳에... 그토록 많은 물이 쏟아져내리는건지......
아마 사흘 밤낮을 그렇게 내린 모양입니다.
라디오 뉴스에서는 한강이 넘쳐서 물난리가 났다고 아우성입니다.

소-
맞어요.....옛날엔 장마때 홍수만 났다하면.....한강이 넘쳤던 것 같네요....

최-
그 쪽도 서른이 안 된 사람 아닌가요?

소-
글쎄요....엄마한테 여쭤보지 않아서....잘 모르겠는데요.
학생은...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학교는 가야 합니다.

최-
학교 가야죠.
"샌님....지금....비와요.....학교 안갈게요...."
이렇게 전화하고 안갈수는 없는 거죠.

소-
네....
항상 그렇듯이 가요쇼는 반드시 계속돼야 하고
아이들은 학교에 반드시 가야 합니다.
그런데.....먹고 살기도 힘든 그 시절....
학교는 가야 하는데 우산이 없습니다.

최-
꼬마 고길동....큰일 났습니다.
우산이 없다니.....
장밧비는 철철 내리는데....그 비를 쫄딱 맞고 학교 갈 일이 끔찍합니다.
꼬마 고길동 어릴 때 부터 남다른 점이 많아서.....
비 맞는 걸 그렇게 좋아했는데......
문제는
비를 쫄딱 맞고 학교에 가면......
내리 몇시간을 젖은 채로 앉아 있어야 하는데
고통스럽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죠.

소-
책걸상이라는 말 요즘도 쓰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당시 걸상이라고 부르던 나무의자에 젖은 옷에서 떨어진 물이 흠뻑먹고......
체온이 젖은 옷 말리는 냄새와
물기에 푹 젖은 나무의자의 냄새가 어우러져서.....묘한 냄새를 풍기죠.
우산이 없는 꼬마 고길동....
길동이는 처마 밑에 서서 세차게 쏟아져 내리는 장맛비를
구슬프게 바라봅니다. 왜 우산이 없을까.....생각하는 건 아닌 모양입니다.
그 나마 한 개 있던 비닐 우산은
약삭빠른 동생 길길이가 벌써 선수를 쳤습니다.

최-
하나뿐인 우산 같이 쓰고 가지......
길길이는 왜 혼자 날름 쓰고 갔대요?

소-
전 날 길동이하고 싸웠답니다. 형 골탕먹일려고 그런거죠.
처마밑에서 구슬픈 얼굴로 빗줄기를 쳐다보던 길동이.....
괜시리 어머니께 짜증을 부립니다.

최-(길동)
"엄마.....엄마는 장남이 비맞고 죽어도 좋수~?
국어책에 보니까.....소나기 맞고 죽은 여자애도 있다우~
뭘 알기나 하셔야지...."

소-
요러다가.....
부지깽이 다루기의 진정한 고수.....길동 어머니의 부지깽이에
뒤통수를 한 방 얻어 맞고 금세 입을 다물어 버립니다.
툭 튀어나온 길동이의 입은 참 빨리도 다물어집니다.

최-
길동 어머니는 눈물을 철철 흘리면서 우는 길동이가
갑자기 불쌍해졌는지.....
광을 뒤적거리다가.....요소비료포대 하나를 들고 나오십니다.
한 쪽을 가위로 오려내더니 길동이의 머리에 씌워주시면서
"너...부지깽이로 열대 맞을래.....이거 쓰고 학교 갈래....."
하시면서 길동이의 등을 힘껏 쳐서 학교로 보냅니다.

소-
길동이는 비료포대 쓰고 학교가는 게 정말 싫었습니다.
이쁜이가 보면 어쩔까 전전긍긍 노심초사하면서,.....
결국 학교 앞까지 비료포대를 쓰고 간 길동.....
쓰레기통에 비룟포대를 버리고 쏜살같이 교실로 뛰어갑니다.
학교앞 문방구아줌마에 따르면.....
어떤 캥거루 같은 애가 어찌나 빨리 달리던지......
오토바이 모터를 달았나 싶더랍니다.
당시엔 자전거에 오토바이 모터를 달고 다닌 사람들이 있었거든요.

최-
차라리 오토바이를 사지 왜 그랬죠?
하여간......
그 날 길동이가 보니까.......쓰레기통에는......
길동이가 쓰고 온 요소비료포대 말고도....
복합비료포대도 있고... 질소비료포대도 있더랍니다.

소-
비는 길동이가 학교수업을 하는 중에도 계속 내립니다.
하늘에 구멍이 난 게 틀림없습니다.
학교에서는 비상회의를 열었는지.......
2교시가 끝난 뒤 그 날 수업을 마치고 모두 집으로 돌려보냅니다.
하지만 길동이는.....
이쁜이하고 그렇게 빨리 헤어지는게 내키지 않았습니다.
사실...길동이는 이쁜이 보러 학교에 다니고 있었거든요.
그리고...이쁜이 한테 잘 보이려고 밤새 공부하기도 하구요.

최-
어린 놈이 아주 엉큼했죠?
아이들과 어울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참 재미있었습니다.
어차피 빨래는 엄마가 하는 거니까....
옷이 물범벅 흙범벅이 돼도....아이들은 별로 개의치 않습니다.
모든 학년이 함께....수업이 끝났기 때문에....
길동이는 동생 길길이를 기다려 함께 집으로 가는 중이었죠.

소-
어디...동생 길길이가 예뻐서 같이 갔겠습니까?
비닐 우산 혼자 쓰고 간 동생 혼 내주려고 그런거죠.
삐쩍마르고 빌빌거리는 길동이가
덩치도 훨씬 크고 운동에는 만능인 동생을 혼내봤자...뻔하지만....
사실,....말 잘 못 하면 동생한테 맞거든요.

최-
평소엔 돌다리로 건너 다니던 개울은.....
불어난 물이 둑방 꼭대기까지 차올라서....비가 조금만 더오면....
둑방을 넘어 마을을 덮칠 기세였습니다.
시뻘건 황토물은 개울을 엄청난 위세로 내려가고 있습니다.
개울 건너 저쪽에서는 동네 아저씨들이 다 나와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개울가에 있던 길동이네 과수원은
벌써 큰 물에 쓸려서....배나무들이 많이 떠내려 간 모양입니다.

소-
개울 저쪽에서는.....길동이 어머니가 부지깽이를 쥐고....
이리 저리 뛰어 다니십니다.
아까운 배나무가 홍수에 떠내려 가는게 가슴이 아프셨던거죠.
길동이는.....갑자기 피가 거꾸로 솓는 걸 느낍니다.
동네 총각 만박이가 떠내려가는 배나무에 올라타고 배를 따먹고 있었던거죠.

최-
자기 물건에 유난히 애착이 강한 길동이....열받을 만하죠.
탱크부대가 지나가는 것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흘러가는 개울물 소리에
길동이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만박이 총각은 떠내려 가는 배나무 위에서 못들은 척 하지만
길동이는 고래고래 소리칩니다.

소-
"야~ 만박아....그거 우리 배나무야.....빨리 내려와.....
나 싸움 잘해....모르지?....나 한테 혼나고 싶지 않으면...빨리 내려와~
어~ 안내려 오네~! 우잉~ 저 나쁜 놈~"

최-
만박이만 빼놓고 동네 총각들은 밧줄을 몸에 감고
모두 인간 사슬을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을 개울을 건네주려는겁니다.
그런데......길동이 성질 어디갑니까?
그렇지 않아도 홍수에 과수원이 떠내려 가는 게 속이 상했는데....
만박이 총각 때문에 더욱 화가 나 있었기 때문에.....
꼴에 성질을 부리고 있습니다.

소-
"나....이래뵈도 남자예요.....나 힘이 얼마나 센데....
우이 씨~ 나 내가 그냥 건널래요.
아...이거 놔요....내가 뭐 바본줄 알아요..?"

최-
요러다가.....
동네 총각 하나한테....뺨을 한 대 얻어 맏았답니다.
하지만....그런다고 고집이 꺽일 길동이가 아니죠.
끝내 지 고집대로 혼자 개울로 들어갑니다.
개울물은 우르릉거리면서....미친듯이 달려가는 괴물같기만 합니다.
솔직히  길동이는 무척 겁이 났겠죠.

소-
그 날....동네 사람들은 길동이 녀석 때문에 또 소동이 일어납니다.
길동이는 두 발짝도 못 뛰고.....
시뻘건 괴물인....홍수난 개울물에 휩쓸려 버렸습니다.
길동이 옆에서는 누구네집 건지
돼지 한 마리가 꽥꽥거리면서.....떠 내려가다가
길동이가 고래 고래 지르는 소리에.....자기의 목소리를 줄이고
길동이의 얼굴을 빤히 쳐다 보더랍니다.

최-
그 날.....길동이는....운 좋게 개울가 나무에 걸려서 목숨을 구했다나....
하여간.....동네 총각들에게 구조된 길동이......
동네 총각들이 한 방씩 먹인 꿀밤을 맛있게 먹고.....
동네망신당한 어머니한테
집에 들어가서 부지깽이로 딱 열대 맞고 정신을 차렸답니다.

소-
열 대 밖에 안 맞았답니까?

최-
네...열 한 대 맞을 뻔 했는데.....
길동 어머니가....."너 몇 대 맞았어...."하고 물어 보시니까....
엉엉 울면서도....길동이는....
"열 대를 맞았사옵니다.....오마니....그만 통촉하시옵소서......
소자가 불쌍해 보이지도 않으시옵나이까?....전하~"
요래서....
길동 어머니가 배꼽 쥐고 웃으시느라고......
더 때릴 수 없었답니다.

소-
네....흑백 사진속의 풍경......
오늘은 비만 왔다하면 홍수가 나던....그 시절.....
길동이네 고향 마을의 개울가 풍경을 그려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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