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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kemoon  [homepage] (2005-05-13 09:43:13, Hit : 2654)
:: 3/16 전세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헤어보니
전세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헤어보니... 고향 떠난 십여 년에 청춘만 늙고...
부평 같은 내신세가 혼자도 기막혀서... 창문 열고 바라보니 하늘은 저쪽...

남편 : “당신... 시방 뭐 허고 있는가?”
춘자 : “나? 응... 오랜만에 시조를 좀 읊어보고 있었다고나 해두지 뭐!”
남편 : “근디 시조가 살짝 틀려부렀다. 거 전세살이가 아니라 타향살인디?”
춘자 : “(남편 말투로) 음마 그요?
전세살이가 아니고 타향살이라고라 고라 고라?
남편 : “그 노래가 우리 아부지 18번이라서 나가 고건 정확허니 안당게”
춘자 : “참 이상하네... 타향살이? 근데... 난 왜 전세살이를 하고 있을까?
남편 : “응... 긍게....거시기... 쬐깐만 참어보드라고.
나가 다 생각이 있어붕께. 어어허~! 날씨가 상당히 거시기해부네?”
춘자 : “당신 생각은 뭐 11년씩이나 걸리고 그러시나? 그 말은 11년 전에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똑같이 했었는데...”
남편 : “뭐시든지 중요헌 것은 심사숙고를 혀야 쓰는 벱이여. 긍게....”
춘자 : “심사숙고를 너무 심하게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11년씩이나...”
남편 : “아따... 금방 고생 끝! 행복 시작이랑게~. 긍께 쬐깐만 기둘러. 잉?”
춘자 : “당신 월급은, 당신이 알고, 내가 알고, 하늘이 아는데... 뭘 기둘러?”
남편 : “올핸 나가 반다시 승진을 허고 말 것이구마? 긍게 쫌 두고 보랑게”

춘자는 바보다. 오늘도 괜시리 하나마나한 소리를 해서 남편 속만 긁어놨다.
전세살이 11년쯤이나 되고 보니 이삿짐을 싸는 데는 이제 완전히 도통했다.
남들은 포장이사가 아니면 엄두를 내지 못하지만, 우린 전혀 걱정이 없다.
뭐 쓸데없는 살림살이도 없을뿐더러,
방 두개와 주방을 훑고 지나가면서 간단하게 손 좀 풀다 보면
완전자동으로 이삿짐이 어느새 하나둘씩 꾸려진다.
그러다 보니 우리 딸애는 친한 친구가 하나도 없다.
겨우 친구들 이름을 좀 외웠다 싶으면,
부모란 사람들은 그새 이삿짐을 꾸려 동네를 뜨기 때문이다.

춘자 :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 일단 당신 차를 팔고, 담배도 끊고, 술도 끊어.
당신 희생이 없이는 우린 평생 전세살이 못 면하니까...”
남편 : “엇따! 박주영이가 골을 넣어부렀어 야? 야는 뭐가 달라도 다르당게”
춘자 : “당장 차 팔고! 담배 끊고! 술 끊어! 알았어?”
남편 : “음마? 요 잡것들 보소. 뭐라? 다케시마의 날이라고라?
이런 호랭이가 물어갈... 하여튼 야들은... 뭐니? 이게 이게... 그냥 콱!”

남편은 신문을 펴들고 애써 딴청을 부리면서도
간혹 뱁새눈을 살짝 틀어서 나의 동태를 살피는 눈치다.
저러는 모습을 보면,
먹을 걸 보고 침 흘리다가 고무신짝에 얻어맞은 떠돌이강아지 같아서
또 그게 그렇게 불쌍해 보인다.

춘자 : “차 팔고, 담배 끊으면... 용돈 올려줄게. 술은 까짓거 내가 봐 준다”
남편 : “야... 근디 차는 꼭 팔아야 쓰것냐? 그럼 고향 갈 땐 어떻코롬...”

남편이 얼마나 불쌍한 표정을 지어 보이던지,
나는 하마터면 남편이 앉아 있는 자리에다가 동전 몇 개를 던져 줄 뻔 했다.

항상 이렇다. 또 다시 항상 원점이다.

춘자(흥얼거리는 노래로) : “전세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헤어보니~”
남편 : “어따... 전세살이가 아니라니끼니... 참말로 타향살이라니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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