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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kemoon  [homepage] (2005-05-12 11:30:13, Hit : 2767)
:: 3/11 이 안에 돌 있다
영어회화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명색이 영어영문학을 전공한 봉춘잔데
어떤 노랑머리가 갑자기 길이라도 물어오면
어떻게 입이라도 뻥긋해야 할 것 같은 생각에서다.
옆집의 발발이 강아지도 사람 말을 알아듣던데
나는 영어공부를 십수 년이나 했는데도 꿀 먹은 벙어리라니,
한심한 노릇이 아닌가?

춘자 : “길녀니? 응. 그래... 춘자. 나 영어회화를 좀 배워볼까 하거든?”
길녀 : “이런 문디 가스나~ 우리 나이가 어디 한두 개가? 갑자기 와?”
춘자 : “아니... 뭐. 요즘 우리 나이에도 치매가 온다며? 머리를 좀....”
길녀 : “우야꼬.바라바라! 니 와이카노? 어데 가서 궁디대고 고돌이나 치라!”
춘자 : “야... 길녀야. 근데 너 언제 일본어 배웠니?”
길녀 : “어데~?”
춘자 : “어디긴 어디야. 일본어 배웠느냐고...? 니 말은 꼭 일본어 같잖아”
길녀 : “바라바라 자야! 고마 니캉 내캉 말 안통하니까네 치아라 마!”
춘자 : “길녀 너는 중국어 전공했잖아. 그럼 어떻게 중국에는 가봤니?”
길녀 : “그그는 그그고....... 나는 미국이랑 유럽에 갔다 안 왔노”
춘자 : “너 영어회화 점수 권총이었다며... 그 실력으로 어떻게... 가니~!”
길녀 : “바라바라바라. 자야! 어데 코쟁이들이 한국말 다 하드노?
아니제? 다 그란기라 마. 내사 어데 가도 다 통한다 안카나?”
춘자 : “얘, 우리 아버지가 그러는데 공자님 말씀에
‘영어도 못하면서 미국 가면 3년이 재수 없다’ 뭐 그런 말이 있다는데...
너 어쩜 좋니?”
길녀 : “고마. 확 쎄리! 마 대뽀까지 마라! 공자가 무신....?”
춘자 : “아냐! 진짜야. 그럼 우리 아버지가 거짓말을 하셨겠니?”
길녀 : “치아라 마. 남들이 들으면 바보들 반상회 한다 카겠다”
춘자 : “너 바보니? 난 아닌데. 그건 그렇구. 어디 영어회화학원... 아니다!
내가 아무래도 엄한데다 전화한 것 같다. 길녀야 짜이찌엔~!”
길녀 : “하이고. 가스나. 니 참말로 별짓 다한데이. 그래 짜이찌엔이다”

허전하다. 요즘은 뭘 해도 허전하다. 봄을 타서 그러나?
마음이 더 심란해지기 전에 영어단어라도 외우면서 정신을 집중해야겠다.
아니다. 김약국의 딸들. 그래... 용빈이하고 홍섭이가 과연 어떻게 될까?
둘이서 빨리 얼레리 꼴레리를 하고 무사히 결혼을 해야 하는데...
아니지! 결혼하면 또 뭐 뭐해. 맨 날 밥하고 빨래하고, 바가지 벅벅 긁고...
대학때 보던 토플책을 꺼냈다.
샤프연필로 괜히 동그라미를 쳐 놓은 흔적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한 때는 공부하는 흉내 좀 내고 살았던 모양이다.
이 두꺼운 책을 첫 장부터 다시 시작할 생각을 하니
막막한 기분이 들어서 커피 한잔을 탔다.
텅 빈 거실에서 혼자 마시는 커피의 향이 더욱 슬프다.
라디오를 틀었다.
때 마침 대학 때 즐겨 듣던 크리스 드 버그가 흘러나온다.
갑자기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나는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라디오를 끄고 다시 책을 폈다.
검은 건 글자요 흰 건 종이다. 하나도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누군 70이 넘어서도 대학엘 간다는데...
봉춘자 머리는 벌써 다 굳었다.

딸 : “엄마, 나 학교에서 쪽지시험 봤는데 백점이다~!”
춘자 : “너는 좋겠다. 그렇게 머리가 좋아서...”
딸 : “엄마는 맨 날 1등만 했다며...”
춘자 : “나? 응... 그래... 뭐 그땐 그랬겠지...나도...”
딸 : “아빠두 맨날 반장만 하고 전교 1등도 하고 그랬다며?”
춘자 : “글세... 엄마는 아빠랑 같은 학교가 아니라서... 뭐 아빠말로는...”
딸 : “근데... 엄마. 나는 왜 엄마 아빠처럼 공부를 잘하지 못해?”
춘자 : “글쎄다. 콩 심은데 콩 나고, 뽕 심은데 뽕 나는 법인데. 왜 그럴까?”
딸 : “그러게 말이야... 진짜 이상하다 그지?”
춘자 : “달래야. 이 안에 돌 있다~?”

나는 내 머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딸아이는 잠시 뜨악한 표정을 짓더니, 아주 좋아 죽겠다며 발을 동동 구른다.
그 말이 그렇게까지 웃겼었나?

딸 : “엄마 머리가 돌이면 난 뭐야? 컴퓨터?”
춘자 : “너두 돌. 그런데 아주 비싼 돌이지”
딸 : “그게 뭔데?”
춘자 : “금강석.... 음... 다른 말로 하면 다이아몬드지.
단단하기도 하지만 세상에서 제일로 비싼 보석이거든...
너는 우리의 보석이야.”

와~! 춘자가 말해 놓고도 진짜 명언이었다.
그래~! 이 안에는 돌 있지만...
내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세상에서 제일 귀한 보석이 있었다.

춘자 : “달래야! 엄마가 뭐 만들어 줄까? 참치 김밥? 치즈 볶음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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