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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kemoon  [homepage] (2005-05-12 11:22:34, Hit : 2667)
:: 3/8 너의 이름을 신달래라고 부를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소녀시절 가슴 설레며 외던 김춘수님의 시 <꽃>이다.

누구나 하나씩 달고 사는 꼬리표 같은 이름...
솔직히 말해서, 봉춘자란 이름도 뭐 그렇게 예쁘거나 산뜻한 건 아니다.

남편 : “나가 이름을 하나 지었는디 니 맘에 들랑가 모르겄네~?”
춘자 : “이름을? 당신이? 당신이 뭘 안다구?”
남편 : “어따... 이름 짓는데 뭐 학식이 필요허당가? 정성만 있으면 되지?”
춘자 : “무슨 소리야. 우주의 원리와 음양오행의 원칙에 맞게 지어야지. 당
신이 그런 거 다 알어? 하나두 모르잖아!”
남편 : “그럼 니 이름은 우주의 원리와 음양오행에 맞게 지은게 춘자냐?”
춘자 : “아니 거기서 내 이름은 왜 또... 그럼, 그러는 당신 이름은... ”

우리 남편 이름도 장난이 아니다.
신씨 집안의 둘째 아들인 우리 남편의 이름은 동발이다.
신동발! 세상에나 얼마나 이름 지을게 없었으면 동발이라니.

남편은 눈을 몇 번 껌뻑거리더니,
이내 안면 정중앙 부위에 있는 쌍굴터널을 벌렁거리면서
연신 뜨거운 수증기를 뻑뻑 내뿜었다.

남편 : “니 내 이름 발음 잘하그라 잉? 자꾸 이상하게 말하지 말드라고 잉?”
춘자 : “그러니까 왜 먼저 건드려. 잘난 거 없으면 겸손하기라도 해야지”
남편 : “야야~! 그만하자. 긍게... 나으 말은 이름은 발음하기 편하고~,
듣기에도 이쁘고~ 뜻이 좋으면 안 되겄느냐 이말이지라~! 잉~”
춘자 : “신동발하고 봉춘자가 낳은 딸 이름이니까... 뭐 ‘신봉동춘’ 하던지
아니면 ‘봉신자발’ 그러면 되겠네... 아님 ‘봉신춘발’하던지...”
남편 : “니 맞고잡냐? 우리 딸 이름인디... 거그 왜 봉짜가 들어가는가?”
춘자 : “아니 요즘 아빠성 엄마성을 다 쓰는 세상인데 뭐. 뭐가 잘못됐어?
왜 좋~잖아! ‘봉신춘발’이... 멋있기만 하구만...뭐!”
남편 : “허허..야! 근디 어째 껄쩍찌근허다. 봉신이 뭐냐? 신봉이면 몰라두”
춘자 : “그거나 그거나 거기서 거기네. 그러니까 그냥 봉신춘발로 해!”
남편 : “움마 움마... 야 좀 보드라고~? 에잇 정의의 주먹이나 받아랏~!”

11년 전, 우리 요러고 싸우다가 결국 법원까지 갔었다.
무슨 서류 미비로 끝내 이혼은 하지 못했지만...

그 난리 끝에 지어진 우리 딸아이의 이름은 순우리말인 <달래>이다.
참 이쁜 이름이다.
뭐 엄밀히 말하자면 ‘신봉달래’ 혹은 ‘봉신달래’인데,
남들은 모두 그냥 <신달래>라고 부른다.

사실... 달래로 지어지기 까지는 우여곡절이 없었던 게 아니다.
나는 할머니가 돼서도 부르기가 자연스러운 이름이어야 한다고 바득바득 우겼고,
남편은 한사코 세종대왕의 뜻을 받들어 우리말로 지어야 한다며 단식투쟁을 벌였다.

그 무렵 친정엄마가 유명한 작명소에서 지어오신 이름은 <경진>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웬지 빈티가 나는 “신달래 할머니”보다는
참으로 고급스러운“신경진 할머니”가 더 예쁘지 않은가?

그 때 내 고집을 꺽지 말았어야 했는데...
요즘들어 딸아이는 걸핏하면 <신달래>가 뭐냐며,
이름을 안 바꿔주면 가출하겠다고 신경질을 부린다.

에고~! 우리집 식구들 이름은 왜 다 이 모양일까?
신동발이에, 봉춘자에, 신달래. 얼굴들은 또 왜 그리 불쌍하게 생겼는지...
비록 우리들 이름은 이토록 처절하고 후줄근해도,
우린 누구보다 착하고 열심히 살고 있으니까
우린 분명 복 받을겨. 암! 이름은 한낱 허울인겨~ 고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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